Might and Magic 2, Gates to Another World

스크린샷: http://www.mobygames.com


장르: 롤플레잉
사양: PC / DOS, XT
만듬: New World Computing, Inc.
펴냄: New World Computing, Inc., 1988
2002. 8. 27. saysix

이 글의 출처와 소유권은  http://saysix.net 이곳에 있습니다.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전작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난 외계의 악마 셸텀(Sheltem)은 또다른 세계 크론(Cron)에 와서 다시금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심지어 그가 정말로 악의를 품은 악마인지조차 사실은 확실치 않았다. 크론의 세계에는 언제부터인가 멸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고, 일찍이 이를 감지한 수수께끼의 현자 코락(Corak)은 다급한 마음에 스스로를 채찍질해 가며 열에 들떠 미친듯이 대책을 연구한다. 하지만 어느날 갑작스레 행방불명되어 버린다.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황폐한 땅, 한 세기 전 어지러운 시대에 인류를 이 땅의 중심에 우뚝 세워 놓은 위대한 왕 칼론(Kalohn)이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후 세상은 다시금 혼돈 속으로 빠져든 참이었다. 이제 옛 영웅들이 사라진 지금 ‘선택받은 자’로서의 숙명을 감내하게 될 주인공 일행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여느날처럼 미들게이트(Middlegate) 여관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 전작을 잇는 시스템

게임을 실행시키면 퍽 낯익은 화면이 나타난다. 1인칭 시점의 롤플레잉 게임이었던 전작의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까닭이다. 화면 왼쪽 윗부분에 시점 창이 자리하고 오른쪽에는 여러 기능을 담은 보조창이, 그리고 아랫쪽에는 캐릭터 창이 보인다. 하지만 답습은 아니다. 언뜻 보기에도 좀더 세련된 색 배치가 눈에 띄며, 보조창 부분도 일목요연하게 직관적 파악이 가능하도록 정리가 되어 있다.

게임을 진행해 보면 사소하지만 불편했던 점을 구석구석 개선한 것이 느껴져 신뢰감을 준다. 보조창에 주변 맵을 삽입한 점이라든지, 자동맵 기능이 추가된 점, 전투 화면에 적 몬스터의 애니메이션 화면이 들어가 있는 점 등은 크게 달라진 사실들이며 그밖에도 소소하게 공들여 다듬은 느낌이 호감을 준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전술적 측면에서 적들의 인공지능이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근접전용 몬스터와 원거리용 몬스터가 전황에 따라서 수시로 유리한 자리를 찾아 이동하며 공격해 온다. 전투 중 앞자리에 있던 몬스터가 쓰러졌을 때 뒷자리에 있던 마법 몬스터나 원거리 무기를 갖고 있는 몬스터가 앞자리로 노출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러면 얼른 다른 자리에 있던 근접전용 몬스터가 앞으로 치고 나오거나 본의아니게 앞에 노출된 몬스터가 뒤로 빠지곤 한다. 전작에서는 몬스터들이 무작정 덤벼들기만 했지만 이번에는 흔히 우리편이 하게 되는 역할 분담 파티 플레이를 그들도 어느 정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참고로 이 게임은 88년도 작품이다. 이 부분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

전체적으로 보아 게임 시스템은 큰 혁신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소소하게 다듬어 완성도를 높인 노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듯싶다.

■ 이야기로서의 게임

마이트 앤 매직 2(이하 마매2)는 크론이라는 방대한 세계를 안에 담고 있다. (1편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크론 외에도 여러 세계가 평행하게 존재하며 이들이 모여 다시 커다란 우주를 이루고 있는 듯싶다.) 이 세계는 그 크기만큼이나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을 담고 있다. 월드 맵 외에도 다섯 개의 마을과 곳곳에 세워져 있는 성들 그리고 무수한 던전들에는 각각 특유의 사건들과 모험이 준비되어 있다.

중심 스토리와는 별 연관이 없지만 여행 중 만나는 인물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며 몇몇 강력한 마법들은 특정 사건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기도 하다. 물론 대개의 마법들은 마법사 길드나 사원에서 익힐 수 있다. 여행 중 인연을 따라 만나거나 도움을 준 인물들 중에는 이를 고마워하며 기꺼이 일행에 합류하는 이들도 있어 효율적인 전략 운영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일행에 합류할 수 있는 인물은 모두 이십여 명 정도 되는데, 덕분에 목적지의 성격에 따라 원래의 일행 외에도 전사형 캐릭터를 보강한다든지 마법사나 성직자를 보강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파티의 성격을 조절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을 참여시키려면 어느 정도 돈을 쥐어 주어야 하는데 능력치가 오를수록 값이 비싸진다.

주인공 일행은 코락이 남긴 ‘크론의 역사’와 코락의 동료가 남긴 ‘코락 실종 사건의 개요’, 이 두 개의 문서를 단서로 파멸의 위험에 처한 크론을 구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여행하게 된다. (이 문서들은 패키지 매뉴얼 안에 본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우연히 들른 마을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수집욕에 눈이 어두워진 성주에게 댓가를 목적으로 힘을 빌려주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게임을 끝내기까지 곳곳에서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사건들을 겪었다. 그 중에서 가장 황당한 사건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이른바 ‘혐오 식품 사건’이었다.

아직 게임 초반, 돈이 궁해진 일행은 돈을 좀 벌 목적으로 격투 경기장에 참가했다. 간신히 승리를 하고 나서 돈을 손에 쥔 일행은 갑자기 생각이 달라졌다. 근검절약하며 싸구려 레이션이나 먹던 지난날들이 웬지 지겨워진 것. 그리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식당에 달려가 평소에는 눈도 돌려보지 못하던 비싼 음식을 마구 주문해 댄 것이다. 배를 두드리며 기분 좋게 마을을 나서던 일행은 갑자기 곡괭이를 거머쥐고 험악한 표정으로 달려든 농부들의 무리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그들이 말하기를… “그런 음식을 먹다니… 죽어랏, 나쁜놈들!!!” 이미 싸움은 피할 수가 없었고, 힘없는 농부들이니 가볍게 눕혀 주고 다시 마을에 들어온 일행은 얼른 식당의 메뉴표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모두 자빠지고 말았다. 메뉴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씌어 있었다. “농부 구이”… 여러 종족이 사는 곳이다 보니 꼭 인간만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마을에 따라서 오크 요리라든지 심지어 드래곤 요리 등도 주문할 수 있는데 저런 요리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 결국 게임 시간으로 두어 달 동안 그 마을 근처만 가면 성난 농부들이 달려드는 통에 꽤 애를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문이 퍼졌었나 봐…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일들을 심심치 않게 겪을 수 있는데, 때로는 스토리와 상관없이 저곳에 가면 또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기분으로 단순히 여행을 다니곤 하기도 했다. (세상을 구해야 하는 영웅들이 어찌 한가롭게…)

■ 닫힌 세계, 열린 세계

전작에도 나왔던 메시지 암호 퍼즐이 마매2에서는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다시 나온다. 세계 곳곳에서 뜻모를 알파벳 문자열을 발견하게 되는데 나중에 이들을 모아 적절히 해독하면 읽을 수 있는 메시지가 완성된다. 내용은 게임 제작자가 플레이어에게 전하는 게임 및 스토리 가이드이다.

게임 제작자와 플레이어 사이에는 일종의 암묵적 동의가 하나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작품 속 세계는 만들어진 허구이지만 플레이어는 그것을 알면서도 플레이 중에는 이를 ‘진짜’라고 생각하며 그 속의 인물이 되어 그 속의 일들을 겪어 나간다는 것. 특히 스토리가 중시되는 게임이라면 더욱 강조되는 항목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 주인공이 되어 게임 ‘내적’ 논리와 사건의 진행을 따라 결말에 이르게 된다. 게임 속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현실 세계는 서로에게 닫혀 있다. 현실 속의 내가 감기에 걸렸다 해서 게임 속 주인공이 기침을 하지는 않는다. 서로의 세계는 서로에게 결코 열려 있지 않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제작자는 그 동의를 스스로 깨 버린다. 마매1에서는 제작자가 스스로의 서명이 담긴 메시지를 세계 곳곳에 남겨 놓더니 급기야는 불쑥 게임 속에 나타나 주인공에게 천연덕스럽게 말을 건넨다. “지금까지 당신을 이 자리에 오도록 이끌었던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와 게임 속의 세계는 서로 상관이 없으며 게임 속의 세계는 그 자체로 실재라는 암묵적 동의가 깨져 버리는 것이다. 이제 게임 속의 세계는 게임 안에서도 진짜가 아닌 ‘가짜’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런 장면을 통해서 나는 게임 안에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뜬금없이 던전 돌벽에 적나라한 힌트가 써져 있고, 제작자의 게임 가이드가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며 지금 막 일어난 사건의 개요에 대해 이미 다른 곳 던전에 낙서처럼 설명되어 있는 사실들에 대해… 말하자면 제작자가 게임 속에 들어와서 플레이어를 모니터링하며 그때 그때 필요한 사실들을 텍스트로 만들어 주인공의 눈 앞에 떨구어 준 것이라 하면 설명이 되는 것이다. 독특한 세계관이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아직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 중 1편과 2편만을 플레이해 본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또 다르게 설명을 하자면 이런 것도 가능할 것이다. 게임 속에 나오는 세계의 제작자는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를 개발한 실제 개발자와 동일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단지 JVC라는 이름만 같을 뿐. 리처드 게리옷이 로드 브리티쉬가 아니듯이) 그리하여 마매1과 2에 나오는 작품 속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맞지만 이를 개발해낸 제작자가 게임 세계 안에 따로 존재하며 실제 마이트 앤 매직의 세계는 이 신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제작자와 그 제작물(주인공이 활동했던 세계)을 포함하여 닫혀진 세계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 (사실 2편의 엔딩만을 두고 볼 때는 이쪽이 더 맞는 설명인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재미있는 설정인 것만은 확실하다.

■ 글을 마치며…

하지만 마매2의 특이한 설정은 그다지 성공적인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논리적 구성과 적절한 사건 진행으로 결말을 이끌어내기보다는 그때 그때 임기 응변 식으로 제작자가 너무 빈번하게 나서서 사건 진행의 방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헛점을 많이 드러낸다.

너그럽게 보아서, 게임 속 제작자가 주인공을 운명의 인물로 찍어 두고 길을 인도했기에 그랬던 것이라 하더라도 이는 적절한 선에서 그쳐야 했다. 자잘한 사건들은 많지만 이를 하나로 통합하고 결말을 향해 구축해 내는 구성력이 상당히 아쉬웠다. 그 많은 사건들을 그냥 독립된 사건들로 두지 말고 내부적으로 무언가 중심 스토리와 관련하여 밝혀낼 수 있는 진실들을 함축해 두었더라면, 그렇게 제작자가 친히 나서서 개임 속에서 동분서주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말해 구성의 허술함을 변명하기 위해 이런 특이한 설정을 도입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초창기 롤플레잉 게임의 한계였을까? 수동적인 플레이어 하나 데리고 말 많은 던전 마스터가 게임 속에서조차 기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닌 던전 마스터라는 역할을 맡아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양새다.

또한 게임 시스템을 개선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러다보니 의욕이 좀 지나친 것은 아니었나 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전작에서는 한 번에 조우할 수 있는 몬스터의 수가 화면창의 한계로 15마리에 불과했는데 2편에서 그 제약이 없어졌다. 문제는, 30마리, 40마리까지는 그런대로 봐 주겠지만, 200마리가 넘어가는 몬스터가 한꺼번에 덤벼들었을 때 일일이 때려 주고 있자면 그야말로 밤이 새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응원군까지 부르면 한 번 조우에 370마리까지 상대하는 경우도 생긴다. 게임을 지루하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엿보이는데다 초창기 롤플레잉 게임으로서 따를 만한 예제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완성도로 만들어낸 노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막 2편을 끝냈는데 벌써 3편 플레이가 기대되는 것을 보면, 어쨌든 잘 만든 게임이 맞긴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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