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ht and Magic, Book 1 Secret of The Inner Sanctum (마이트 앤 매직)


스크린샷: http://www.mobygames.com 

장르 : 롤플레잉
사양 : DOS, XT
만듬 : New World Computing, Inc.
펴냄 : New World Computing, Inc., 1987
2001. 12. 27 says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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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알고 있는 흔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위저드리', '울티마',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를 묶어 3대 롤플레잉 게임이라 일컫는다는 이야기. 도대체 무엇이 대단하길래 그렇게 부르는 것일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는 꽤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D&D 기반의 유명한 롤플레잉 게임이다. 지금까지 8개의 본편 시리즈가 나와 있으며, 그 유명세는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외 여러 외전 시리즈를 낳은 것으로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시크릿 오브 이너 생크텀(이하 마매1로 표기)'은 그 방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작품이다.

그런데 만약 명성만을 믿고 이 게임을 처음 접하는 게이머가 있다면 일단 첫모습에서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제작년도가 1987년이라니 벌써 15년 전에 만들어진 게임이 아닌가? 컴퓨터 게임의 짧은 역사를 뒤돌아볼 때, 지금이 숨가쁘게 발전하는 기술 시대라는 점을 제쳐 두더라도 15년 전이면 석기 시대에 비견되고도 남는 시간이다.

하지만 긴 시간을 뛰어넘어 아직도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뭔가 나름대로의 재미나 미덕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컴퓨터 게임의 초창기에 롤플레잉 게임의 기반을 다졌다는 역사적 가치야 이미 두루 인정된 바 있지만, 게임의 직접적인 재미는 역사적 가치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 게임을 즐기고 있는 플레이어에게 공감과 흡인력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잘 만들어진 게임일수록 그 요소들이 갖는 힘이 크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내게는 이 게임이 괜찮은 작품으로 다가왔다.


■ 초창기 롤플레잉 게임의 조촐한 맛

롤플레잉 게임만이 갖는 매력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상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매순간 부딪치는 딜레마를 자신이 캐릭터에 부여한 성격에 따라 해결해 가는 짜릿한 경험. 차츰 그 세계에 익숙해지며 성장해 나가는 자신의 분신, 그리고 그 분신을 바라보는 즐거움. 혹은 상상의 세계 속에 숨겨져 있는 진실이 자신에 의해 드라마틱하게 드러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성취감...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롤플레잉 게임만의 독특한 재미를 이끌어내는 것일 게다.

이런 요소들이 충실히 실현될수록 플레이어는 더 큰 즐거움을 맛보게 되겠지만, 자칫 매니악한 성격을 띠게 되어 롤플레잉 게임에 익숙치 않은 이에게는 도리어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

'마매1'은 기본 컨셉에 충실하되 대중적인 기호를 고려하여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인다. 앞서 발표된 '위저드리'가 높은 난이도로 매니아층에 어필한 것과는 달리 타겟층을 조금은 다르게 설정했다고 볼 수 있다. 난이도를 낮추고, 엄격한 D&D 룰을 과감하게 수정하고, 곁가지 스토리들을 알맞게 버무려서 깔끔한 작품 하나를 빚어냈다. 자세한 설정이 빛나는 '위저드리'나 독특한 스토리 방식의 '울티마' 시리즈에 비해 조금은 개성이 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게임 안 각각의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흡인력만큼은 다른 게임들이 따라오기 힘들 만큼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위저드리'나 '울티마'의 경우 초기작들은 좀 어설퍼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마매1'의 경우 첫 작품이면서도 이만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은 후발 주자로서의 유리함에 더해, 너무 시대를 앞서나가려 하지 않는 원만함을 미덕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물론 요즘 쏟아져 나오는 세련된 외형의 게임들에 비한다면 지극히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게임에 깊이 빠져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절묘한 균형과 충실한 시스템으로 플레이어를 끌어들이는 조촐한 초기 롤플레잉 게임이라 평가하고 싶다.


■ 소박한 시스템

처음 게임을 실행시키면 컴퓨터의 비프음으로 연주되는 오프닝 음악이 먼저 귀를 때린다. 사운드 카드를 지원하지 않는 까닭이다. 게임 중에도 가끔 음악이 나오곤 하는데, 자주 들어야 하는만큼 질리지 않는 무난한 느낌의 선율로 되어 있다.

'마매1'은 6명의 캐릭터와 함께 '반(Varn)'의 세계를 여행하는 1인칭 시점의 롤플레잉 게임이다. 그곳에는 드넓은 사막이 있는가 하면, 초원과 수풀, 습습한 늪지대, 빙벽이 높다랗게 솟아있는 얼음 지역도 있다. 각각의 지역에는 지하로 통하는 던전 입구가 열려 있고, 마을과 성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오토맵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모눈 종이에 지도를 그려가면서 게임을 즐겼는데, 끝내고 보니 꽤 두툼하게 쌓일 만큼 방대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전투 부분은 이 게임의 백미라 생각된다. 많은 롤플레잉 게임이 그렇듯이 '마매1'도 D&D 룰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컴퓨터 게임이란 점을 감안하여 대폭 수정을 가하고 새롭게 균형을 맞추었다. 마법의 경우, 근거리 공격과 원거리 공격, 모두 공격용의 주문이 따로 존재하고, 실내와 실외에 따른 제한이 있어 전투의 전략성과 함께 여러 변수를 부여한다. 특히 각각의 마법 효과가 갖는 구별이 뚜렷하다는 것은 '마매1'이 갖는 장점이라 생각한다. 주어진 전투 상황 속에 플레이어의 의도대로 좀더 깊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는 다른 게임들의 마법 체계와 그리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실제 사용해 보면 묘하게도 각각의 주문마다 뚜렷이 나타나는 개성적인 용도를 발견하게 된다. 강한 적을 상대할 때 마법보다는 물리적 공격이 더 효과가 있는 것은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다.

지금 관점에서 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전투 과정이 오로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림 한 장 없이 글로만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누가 누구를 때렸고,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텍스트만 계속 뜨다가 전투가 끝난다. 플레이어가 초보자일 경우, 흥미를 잃고 접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마매1'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재치 있는 퍼즐도 빼놓을 수 없을 듯싶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골드 메시지와 실버 메시지, 외계의 악마와 대결할 때 만나게 되는 이름 관련 퍼즐 등은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산뜻한 퍼즐로서 이 게임이 주는 여러 잔재미 중 하나였다.


■ 글을 마치며...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롤플레잉 게임의 매력은 가상 세계 속 주인공이 되어 자신과는 또 다른 삶을 살아 볼 수 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에게도 꽤나 매력적인 부분인 모양이다. 리처드 게리옷이 로드 브리티쉬라는 이름으로 '울티마'의 세계 속에 자리잡고 앉은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마매1'의 디자이너이자 프로그래머인 Jon Van Caneghem도 게임 안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숨겨진 가이드 메시지들을 만나게 되는데 문서 맨 밑에 JVC라는 서명이 되어 있다. 나중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만나보게도 될 것이다.

비록 초라한 그래픽과 단순한 스토리의 게임이었지만, 롤플레잉 게임의 원초적인 매력만큼은 온전히 살아 있는 작품이었다. 게임 제작이 아직 거대 자본화되기 이전, 아직은 제작자 개인의 소박한 꿈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었기에, 그래서 느껴진 향수도 아마 어느 정도는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에게 말을 거는 제작자를 만나고 나서 받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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